한국사경찰공무원(순경) 한국사 · 2018년03월24일 · 14/20
14.조선 후기 노론 내부에 주기설과 주리설의 분파가 생겨 이른바 '호락시비(湖洛是非)'로 불리는 큰 논쟁이 일어났다. 이 호락(湖洛) 논쟁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1
영조 때에 한원진과 윤봉구로 대표되는 충청도 노론은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은 다르다고 보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내세웠다.
2
호론의 주장에는 청나라를 중화로 보려는 대의명분론이 깔려 있었다.정답
3
이간, 김창협 등으로 대표되는 서울 중심의 노론은 인성과 물성이 같다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하였다.
4
낙론의 주장은 북학파의 과학기술 존중과 이용후생사상으로 이어졌다.
해설
2. 낙론의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