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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구분없음수능(국사)(2013년이전) · 2008년06월04일 · 18/20

18.(가)~(라) 붕당의 학문과 관련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17번 공통지문 문제)(정답률:알수없음)

1
(가)는 현실적 외교 노선을 추구하는 등 성리학적 의리 명분론에 구애받지 않았다.정답
2
(나)는 이이와 성혼의 문인이 가담한 것을 계기로 학파적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3
(다) 계열 학자들 사이에서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같은지 다른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4
(라) 계열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양명학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5
(가)와 (나)의 예학의 차이는 두 차례의 예송으로 표출되었다.

해설

붕당의 학풍 파악 [정답해설] (가)는 남인, (나)는 서인, (다)는 노론, (라)는 소론이다. 선조 때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을 계기로 심의겸을 지지하던 기성 사림을 동인, 김효원을 지지하던 신진 사림을 서인이라 하였다. 동인은 이황, 조식, 서경덕의 학문을 계승한 사람을 중심으로 다수의 사림이 참여하여 먼저 붕당을 이루었고, 서인은 이이와 성혼의 문인들이 가담함으로써 비로소 붕당의 모습을 갖추었다. 서인과 남인은 현종 때 효종과 효종비의 죽음을 계기로 두 차례의 예송 논쟁을 벌였고 두 번째 예송의 결과 남인이 집권하게 되었다. 이이의 정통 학통을 고수하는 노론은 그 내부에서 충청도 지역의 노론들이 인물성이론을 주장하여 이를 호론이라 하고 서울과 경기 지역 노론들이 인물성동론을 주장하여 이를 낙론이라 하여 이른바 호락 논쟁이 전개 되었다. 성혼의 학문을 이어받아 학문의 탄력성이 큰 소론은 양명학을 연구하여 18세기 정제두를 중심으로 강화학파를 형성하였다. ① 현실적 외교 노선은 광해군 때 집권했던 북인이 추진하였다. [수능 해설 출처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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