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 구분 없음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2012년05월12일 · 33/50
33.(가)에 들어갈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
남접과 북접의 연합이 이루어졌다.
2
정부가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3
집강소를 중심으로 개혁안이 실시되었다.
4
농민들이 장성 황룡촌에서 관군을 맞아 싸웠다.
5
조병갑의 폭정에 항거하여 군민들이 관아를 습격하였다.정답
해설
조병갑에 폭정에 항거하여 군민들이 관아를 습격한거에 정부가 이용태를 내려보낸것임. *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과정 <고부봉기>: 1894.1.10 • 직접적 원인: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 • 전봉준이 사발통문을 돌려 1천여 명의 농민을 이끌고 고부 관아 습격 → 관리들을 징벌한 뒤 해산 • 정부는 조병갑을 탄핵(후임 박원명)하고 안핵사 파견 <1차 봉기>: 1894.4, 반봉건적, 남접 중심 • 안핵사(이용태)가 봉기 관련자를 역적으로 몰아 탄압 •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 재봉기(무장, 백산 봉기) → 황토현(정읍), 황룡촌(장성) 전투에서 관군 격퇴 → 전주성 점령(4.27) • 정부의 요청에 따라 청군 파견(아산만 상륙 5. 5) → 톈진 조약 위반을 명분으로 일본군 파견(인천 상륙 5. 9) • 전주 화약 체결(5.8): 동학 농민군은 외국 군대 철수와 폐정 개혁을 조건으로 정부와 화친 → 집강소 설치 → 일본의 궁성 침입(6.21) <집강소 시기> • 전라도 각 고을에 설치한 동학 농민군의 자치 기구 • 폐정 개혁안 실천 → 불량한 지주와 부호 처벌, 신분 질서 해체, 치안 유지 <2차 봉기>: 1894.9, 남접+북접, 항일구국투쟁 •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내정간섭, 개혁 강요→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다시 봉기 • 남ㆍ북접 연합부대 형성(논산에 대본영 설치) • 전봉준이 이끄는 주력 부대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정부군에게 패퇴(11월) → 전봉준 등 동학 지도자 체포(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