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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 구분 없음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2012년08월18일 · 46/50

46.(가), (나) 역사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6번 문제 이미지
1
(가) - 원 간섭기에 쓰여졌다.
2
(가) - 우리나라 역사를 중국사와 대등하게 서술하였다.
3
(나) - 발해사를 우리 역사로 인식하였다.
4
(나) -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5
(가), (나) - 우리나라 고대사를 기전체 형식으로 정리하였다.정답

해설

* 제왕운기와 발해고 (가) 제왕운기(1287): 충렬왕 13년에 이승휴가 사찬하여 왕에게 올린 운문체로 서술한 역사시로 상(上)은 중국사, 하(下)는 한국사를 7언시, 5언시로 중국사(전설시대~원)와 본국(단군~충렬왕)의 역사를 병렬적(대등하게)으로 대비해 서술하였다. 단군 기년도 사용하였고, 단군(혈연 공동체), 기자(문화 공동체), 위만(민족 생활권)으로 이어지는 3조선설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3한, 3국, 예맥, 부여 등 모든 고대국가들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라 하고, 그 생활권을 요동 이동 지역으로서, 중국과 다른 또 하나의 천하세계로 파악하였으며, 발해를 본국 역사에 포괄하였다. 그러나 문화 의식의 폭이 식민지적 체질로 인해 제한되어서 체제가 帝 = 중국, 王 = 본국 이라는 사대적 명분론에 입각해 있어서 자주성이 삼국사기보다 후퇴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한 을지문덕과 강감찬의 기록을 삭제하였는데 이는 몽고 지배에 대한 체념과 냉소적인 당시 일부 지식인들의 입장을 반영한 한계가 드러난다. (나) 발해고(1784) : 서얼 출신이자 규장각 4검서관 출신이며 북학파 실학자인 유득공의 발해시대 역사서. 반도 사관 탈피와 남북국 시대를 설정, 신라의 삼국 통일을 불완전한 것으로 규정하고 백제와 신라를 대등한 국가로 인사하여, 남의 신라와 북의 발해를 남북국 시대라 부를 것을 처음으로 제안하였다. 또한 고려가 발해사를 찬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구려·발해의 영토를 점령하고 있던 여진·거란에 대해 영토적 권리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⑤ 현존하는 고대사를 다룬 완전한 기전체 역사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뿐이며, ‘고려사’는 기전체 역사서이기는 하나 고려시대만 다루었다. * 한치윤의 ‘해동역사’도 단군~고려까지의 역사를 다루었으나 연표가 없는 기전체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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