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목 구분 없음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2016년05월28일 · 22/50

22.(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2번 문제 이미지
1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이 원인이 되었다.정답
2
윤임 일파가 제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이조 전랑을 둘러싼 동인과 서인의 갈등이 배경이 되었다.
4
대비의 복상 문제가 붕당의 대립으로 확대되어 일어났다.
5
희빈 장씨 소생의 원자 명호(名號) 문제로 인해 발생하였다.

해설

* 김굉필(사림)과 갑자사화(1504) 김종직(1431~1492)과 그의 문인 김굉필(1454~1504) 등이 성종 때에 중앙에 진출하면서 사림은 정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무오사화(1498, 조의제문 사초 문제), 갑자사화(1504, 폐비 윤씨 사사 문제)를 겪으면서 영남 사림의 대부분이 몰락하였다. 연산군은 이후 언론을 극도로 탄압하고 재정을 낭비하는 등 폭압적인 정치를 단행하다가 결국 중종반정으로 쫓겨났다(1506). 그러나 이에 대한 공신들의 반발로 말미암아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세력은 대부분 제거되었다(기묘사화, 1519). 명종이 즉위하면서 윤원형(소윤), 윤임(대윤) 등 외척간의 권력다툼에 휩쓸려 사림 세력은 윤임 일파와 함께 또다시 정계에서 밀려났다(을사사화, 1545). 이조 전랑의 임명 문제(김효원과 심충겸)와 공론을 둘러싸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되었다(1575). ④ 현종 때에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자의대비의 복상기간을 놓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두 차례의 예송(기해예송-1659, 갑인예송-1674)이 발생하였다. ⑤ 숙종 때의 서인에 의한 경신환국(1680)으로 축출된 남인은, 원자(장희빈 소생) 정함에서 서인을 몰아내고 집권하였고, 송시열 등이 사사되었다(1689, 기사환국).

이 시험을 직접 풀어보세요

실전과 동일한 CBT 환경에서 시간 제한 연습

회원가입 없이 CBT 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