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 구분 없음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2016년05월28일 · 26/50
26.다음 글이 쓰인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2
국경 지역에 4군 6진이 개척되었다.
3
사절 왕래를 위하여 북평관이 개설되었다.
4
일본에 제한된 무역을 허용한 기유약조가 체결되었다.정답
5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임시 기구로 비변사가 설치되었다.
해설
* 임진왜란 이후의 역사적 사실(여진, 일본 외교) - 보기의 자료는 임진왜란(1592~1598) 당시 귀순한 왜장 출신 장군 김충선(1571~1642)에 관한 것이다. 1609년(광해군 원년)에는 대마도주와 기유약조(세견선 20척, 세사미 100석 이내)를 체결하여 국교가 재개되며 부산에 왜관이 설치되었다(1609년 두모포->1678년 초량진) ①, ② 세종 대에 왜구를 강력히 응징하기 위하여 이종무를 시키어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을 토벌하였고(1419), 또한 여진족이 살던 북방 지역을 개척하였다. 최윤덕 장군을 시켜 압록강 상류 지역을 확보하여 북서 4군을 설치하고(1433), 김종서 장군을 시켜 두만강 하류 일대까지 확보하여 동북 6진을 설치하였다(1449). ③ 조선 초기에 여진 사절단을 대접하는 곳으로 서울 동대문 인근에 북평관(야인관)을 설치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여진의 침략이 심해지며 없어졌다. ⑤ 중종 때 3포 왜란(1510, 지변사 재상 소집)이 일어나자 임시기구로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였다(1517년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