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가)~(다) 주장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해설
* 위정척사운동의 시대적 변천 (가) 1860년대: 천주교가 유포되고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가 거세어지자 유생들은 외국과의 교역에 의한 국내 산업의 피폐, 천주교의 확산에 따른 미풍양속의 파괴 등을 들며 통상 반대론을 내세웠다. 병인양요(1866)가 일어나자 기정진, 이항로 등은 서양의 무력 침략에 맞서 싸우자는 척화주전론(서양과 화친을 배척하고 싸울 것을 주장)을 내세웠다. 이러한 주장은 유생들의 광범위한 호응을 얻었으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 정책을 뒷받침하였다. (나) 1870년대: 일본이 조선에 개항을 요구하자 최익현을 비롯한 유생들은 일본과의 수교를 반대하는 개항 반대론을 주장하였다. 일본이 서양에게 이미 문호를 개방하였으므로 서양 세력과 다를 것이 없다는 왜양일체론을 주장하며 강화도 조약(1876.1) 체결에 반대하였다. (다) 1880년대: 정부가 개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선책략’을 유포하고 미국과 통상 조약을 체결하려 하자 유생들은 집단 상소를 올려 반발하였다.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은 ‘만인소’를 올려 ‘조선책략(러시아를 막기 위한 미.일과의 연대’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김홍집의 처벌을 요구하였다. 이를 계기로 전국적인 상소 운동이 전개되었다. 강원도 유생 홍재학은 정부의 개화 정책을 비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왕까지 규탄하였다가 처형당하였다. ④ 1890년대 이후: 1890년대 이후에는 을미사변과 단발령 실시에 항거하여 대대적으로 유인석(제천), 이소응(춘천) 등이 의병(을미의병, 1895~1896)을 일으키며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의병 운동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