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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 구분 없음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2016년05월28일 · 42/50

42.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옳은 것은? [3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2번 문제 이미지
1
(가)-해조신문, 권업신문 등을 발간하였습니다.
2
(가)-독립군 양성을 위해 신흥 강습소를 세웠습니다.정답
3
(나)-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를 결성하였습니다.
4
(나)-대한인 국민회를 중심으로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5
(다)-민족 교육을 위해 서전서숙, 명동 학교 등을 건립하였습니다.

해설

* 서간도, 북간도, 연해주의 민족운동 역사 (가) 서간도(또는 남만주): 신민회 회원들이 독립군 양성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회영, 이상룡 등이 중심이 되어 삼원보에 민족 운동 단체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 강습소(후일 신흥 무관 학교)와 같은 군사 간부 양성소를 설치하였다(1911). 특히 신흥학교 졸업생들이 중심이 되어 백서농장을 건설하고 독립군을 편성, 훈련하였다. 경학사는 뒤에 부민단, 한족회로 발전하면서 독립군(서로 군정서)을 조직하였다 (나) 북간도: 용정촌, 명동촌 등 많은 한인 집단촌이 형성되어 이를 중심으로 애국지사들은 간민회 등 자치 단체를 만들어 동포 사회를 이끌어 가면서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간민회는 민족 교육과 한인들의 법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북간도 한인 사회의 형성과 단결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 서전서숙(1906, 이상설), 명동 학교(1908, 김약연) 등 민족 학교를 세워 철저한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북간도로 거점을 옮긴 대종교에서도 중광단이란 무장 독립 단체를 만들고 사관 양성소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중광단은 3·1 운동 이후 북로군정서로 발전하였다. (다) 연해주(신한촌): 1860년 이후 많은 동포들이 이주해 살고 있던 러시아령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교민과 언론(1908년 해조신문 창간)이 형성되었고, 1910년 6월과 8월 유인석, 이범윤 등이 중심이 되어 13도 의군과 성명회가 설립되었고, 1911년에는 독립운동 기지인 신한촌과 이를 기반으로 자치조직인 권업회가 설립되어 독립운동의 경제 기반을 마련하고 권업신문과 학교, 도서관을 설치하였으며, 군정기관으로 이상설, 이동휘 등은 1914년 대한광복군 정부를 조직하여 군사활동을 준비하였으며, 러시아혁명(1917) 직후 전로한족회 중앙 총회가 결성되었는데, 이 단체는 3·1 운동 직후 임시정부 형태의 대한국민의회(1919.3)로 발전하였다. ④ 1908년에 장인환, 전명운이 1차 한일협약에 의해 외교 고문으로 왔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하는 의거를 계기로 동포 사회에 애국심이 고조되자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주 지역 한인 단체를 통합한 대한인 국민회가 결성되었다(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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