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해설
* 산미증식계획 실시(1920)와 조선노농총동맹 분리(1927) 사이 시기의 역사적 사실 - 1910년대 말, 1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빠르게 성장하던 일본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급속한 공업화로 인한 농업 부문 취약으로 생긴 일본 국내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1920년부터 시작된 산미 증식 계획(1920~1934)을 실시하였다. - 노동자 농민의 공동 조직인 조선 노농 총동맹(1924)은 1927년 조선 노동 총동맹과 조선 농민 총동맹으로 분리되며, 노동쟁의와 소작쟁의 모두 전국적 조직으로 커지며 쟁의는 더욱 확산되었다. ① 일제는 1930년대 들어 소작농민들의 불만을 무마키 위해 관제농민운동인 농촌진흥운동(1932~1940)을 전개하고, 조선소작조정령(1932), 조선농지령(1934) 등을 통해 지주의 소작권 제한을 정부가 관리.규제하며 소작농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무마하며 지주들을 관치로 통제하려 하였다. ② 일제는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여 인적·물적 자원의 수탈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③ 1923년의 전남 신안군의 암태도 소작 쟁의(암태 소작회 주도)는 한국인 지주와 일본 경찰에 맞서 1년간 싸워 소작료 인하를 관철시킨 소작쟁의의 대표적 사례이다. ④ 개항(1876) 직후부터 일본 상인들이 곡물을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가면서 곡물 값이 크게 올랐고, 흉년으로 곡물이 크게 부족해지자, 1889년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은 곡물 유출을 막기 위해 개정된 조·일 통상 장정(1883)에 따라 1개월 전에 외교 담당 관청에 통고하고 방곡령을 실시하였다. ⑤ 일제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토지 회사나 한국으로 건너오는 일본인에게 싼 값으로 넘겨주어, 일본인들이 많은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