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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 구분 없음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2018년02월03일 · 11/50

11.(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1번 문제 이미지
1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2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되었다.
3
후당,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정답
4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5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해설

보기 사료의 내용은 첫 번째 사료 -> 고려 충렬왕 1281년 승려 일연에 의하여 작성된 삼국유사 역사서이다. 삼국유사->권2 기이2 후백제 견훤에 대한 내용이다. 신검, 양검, 용검, 금강은 견훤의 10여 명의 아들 중 이름이고 첫째 장남은 신검이다. 두 번째 사료에서 역적인 아들을 베고자 할 뿐이라고 말하는 역적 아들은 신검이다. 신검은 후백제 부왕인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견훤이 그렇게 아낀 넷째 아들 금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두 번째 사료 -> 조선 세종 31년 ~ 조선 문종 1년 (1449~1451) 왕의 명을 받아 김종서 정인지(외 32명) 편찬한 고려시대 역사서 고려사 이다. 고려사 권2 -> 세가 권제 2 -> 태조 19년(936년 6월) 견훤의 요청대로 후백제 정벌을 허락하다!의 사료이다. 왕건에게 견훤이 신검을 벌하여 달라는 용청 내용이다. 보기의 사료는 모두 후백제 왕 견훤을 말 한다. 보기 설명 ① 김흠돌은 김유신과 김인문을 도와 고구려 정벌에 큰 공을 세운 장군으로 신문왕의 장인이기도 한다. 반란을 진압한 사람은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아버지로 '오기공'을 말하지만 요지는 김흠돌의 난(681년)을 진압하고 전제왕권을 확립한 신문왕을 지칭한다. 후삼국 훨씬 이전 일이다. ②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된 사람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경순왕을 말한다. 국력이 쇠퇴하고 민심이 신흥 고려로 기울자 항복 문서를 고려 태조 왕건에게 받치며 고려에 귀순 후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되었다. ③ 900년에 후백제를 완산주(전주시)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운 견훤이 외교로서 중국의 오월, 후당에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 관계를 수립하니 견훤을 지칭한다. ④ 901년에 궁예는 고구려 계승 의식을 표방하여 국호를 고려(후고구려)라고 하고 나라를 송악(개성)에 세운다. 후에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연호를 무태로 하였으며 905년에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즉 궁예를 말 한다. <(911년) 국호를 또 변경하여 태봉이라 하고 연호를 수덕만세라고 변경 하였다가 후에 왕건의 역성혁명(918년) 이후로 국호를 고려로 변경(연호는 천수)하였다.> ⑤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서 관리의 규범을 제시한 왕은 고려 태조 왕건을 말한다. 정계와 계백료서는 왕건이 저술하였다고 하지만 현재 책은 전하지 않고 있어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정계 , 계백료서 => 왕건이 직접 지은 신하의 예의와 도리를 밝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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