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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 구분 없음9급 국가직 공무원 한국사 · 2014년04월19일 · 19/20

19.다음은 박은식이 저술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일부분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사건과 관련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9급 국가직 공무원 한국사 19번 문제 이미지
1
일제는 무단통치를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꾸었다.
2
독립운동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대규모의 만세운동이었다.
3
세계 약소 민족의 독립운동에도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4
파리강화회의에 신규식을 대표로 파견하여 이 사건의 진상을 널리 알렸다.정답

해설

4.신한 청년당의 대표로 19년 파리에 간 김규식은 문전박대 당했다. 승전국의 식민지란 이유로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수립의 필요성을 깨닫고 3.1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실행. 보기에 신규식으로 되어있지만 문제 자체의 오류 입니다.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간 사람은 프리스턴대 출신의 김규식 입니다. 신규식 : 11년 상하이 망명 ->중국의 신해혁명 참여->이후 임정에대한 장제스의 국민당의 지지를 받음->이범석을 쑨원에게 소개, 운남 육군 강무학교에 입학시켜줌->18년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를 발표한 이후 신한 청년당 조직, 19년 임정수립 이후 11월에 법무총장 취임->22년 병세가 악화되어 9월 별세 김규식 : 미국 유학,프린스턴 대학교->05년 YMCA간사로 취임.-> 13년 중국 망명->18년 여운형과 함께 신한청년당 창설->신한청년당의 대표로 19년 파리 강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불발->이후 3.1만세운동 준비 및 실행 ->19년 4월 외무총장으로 취임. ->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 개조파에서 김규식은 신채호와 함께 창조파->30년 임정에 입각하여 국무위원 선임,->35년 민족혁명당 결성 주도->40년 민족 혁명당의 임시정부 입각 결정->47년까지 임시정부 부주석->45년 12월 신탁총치 반대 ->이후 모스크바 3상회의 전무을 입수하면서 부분적 찬탁 동의->46년 여운형과 함께 좌우 합작 운동 시작-> 47년 친일파 민족 반역자 처단 요구->50년 6.25전쟁때 북한군에게 납북되어 12월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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