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통일 신라의 지방 행정 조직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해설
통일 신라의 통치 체제의 확립 통일 이후 신라는 중국식 정치제도를 수용하여 강력한 중앙 집권적 전제 국가로 체제를 재정비하였다. 중앙 통치 조직은 집사부(시중)의 기능을 강화하고 그 아래 위화부를 비롯한 13부를 두고 행정 업무를 분담하였으며 이후 14부로 개편·설치하게 된다. 특히 사정부를 두어 관리들을 감찰하였으며 국학(국립 대학)을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지방은 9주 5소경 제도로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였다. 9주의 장관은 군주로 이후 총관으로 바뀌면서 군사적 기능은 약화되고, 행정적 기능이 강화되었다. 일부 군·현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었으며 촌락은 토착 세력인 촌주가 다스렸다. 5소경은 수도 경주가 지역적으로 치우친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군사·행정상의 요지에 왕족이나 귀족들을 내려 보내 통치하게 하였다. 이후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고 문화·행정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였다. (원주 - 북원경, 충주 - 중원경, 청주 - 서원경, 남원 - 남원경, 김해 - 금관경) 또한 반란을 일으킨 지역이나 정복한 지역에 향·부곡의 특수 행정 구역을 설치하고, 외사정을 파견하여 지방관을 감찰하였다. 또한 지방 귀족의 자제들을 금성에 머물게 하는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하였다. 군사 조직으로는 중앙군인 9서당이 있었다. 9서당은 민족융합 정책의 일환으로 고구려, 백제, 말갈인도 포함한 군대였다. 지방군은 10정이 있었으며 9주에 1정씩 설치하고 한 주는 지역이 다른 곳보다 넓어 2정을 설치하였다. 통일 신라 통치체계의 가장 큰 한계는 무엇보다 권력의 핵심은 모두 중앙 진골 귀족이 독점함으로써 사회통합에 실패했다는 데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통일 신라의 통치 체제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