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학지적기사 · 2014년03월02일 · 62/100
62.우리나라에서 자호제도가 처음 사용된 시기는?
1
고려정답
2
백제
3
신라
4
조선
해설
고려 토지기록부 고려시대의 토지대장인 양안(量案)이 완전한 형태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없으나 고려 초기 사원이 소유한 토지에 대한 토지대장의 형시과 기재내용은 사원에 있는 석탑의 내용에 나타나 있다. 이를 보면 토지소재지와 면적, 지목, 경작 유무, 사표(동서남북의 토지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표식)등 현대의 토지대장의 내용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고려 말기에 와서는 과전법이 실시되어 양안도 초기나 중기의 것과는 전혀 다른 과전법에 적합한 양식으로 고쳐지고 토지의 정확한 파악을 위하여 지번(자호)제도를 창설하게 되었다. 이 지번(자호) 제도는 조선에 와서 일자오결제도(一字五結制度)의 계기가 되었으며, 조선에서는 이를 천자답(天字畓), 지자답(地字畓) 등으로 바뀌었다. 1)양안 : 토지의 소유주, 지목, 면적, 등급, 형상, 사표등이 기록됨 2)도행 : 송량경이 정두사의 전지를 측량하여 도행이라는 토지대장 작성 3)작 : 양전사 전수창부경 예언, 하전 봉휴, 산사천달 등이 송량경의 도행을 기초로 작이라는 토지대장을 만듦 4)자호제도시행(최초) 5)과전법 :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전제개혁을 통해 전국의 전답을 국유화하여 공전을 확보함으로써 국가재정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하였으며 경작자는 백성이지만 등급에 따라 관리들에게 조세를 납부하였으며 토지의 정확한 파악을 위하여 지번(자호)제도를 도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