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가) 정당이 주도한 (나)의 결과로 옳은 것은? [3점]

해설
* 3대 국회와 사사오입 개헌(1954) • (가)는 이승만 정권기인 3대 국회(1954~1958) 때의 여당인 자유당이다. • 1954년 5월, 제3대 국회의 민의원 선거에서는 관권의 개입으로 자유당이 압승하였다. 본래 2차 개헌(발췌개헌)에 따라 양원(참의원.민의원) 선거가 있어야 하나 6·25 전쟁 직후 국내 정세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참의원 선거는 치르지 않았다. 이승만과 자유당은 권력을 계속 장악하기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을 철폐하자는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국회는 야당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 이를 부결시켰으나, 자유당은 부결 이틀 만에 사사오입의 논리를 내세워 가결을 선언하였다(2차 개헌: 1954). ① 4.19혁명의 결과로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허정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 정부가 수립되어,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 국회를 골자로 하는 헌법으로 개정되고(3차 개헌: 1960) 장면 정권의 의원 내각제 정부가 구성되었다. ③ 제헌 국회는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 국회의장에 신익희를 선출하였다(1948). ②, ④ 1950년 5월, 제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남북 협상을 통한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중도 세력(무소속)이 국회에 많이 진출함으로써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국회 간접 선거로는 재선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거하는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였다. 6·25 전쟁 중에,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직선제 개헌안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부결하였고(1952.1), 민주 국민당과 무소속 국회의원들은 내각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러자 정부는 전시 수도인 부산 일대에 비상 계엄을 선포하고, 내각제를 찬성하는 의원들을 헌병대로 연행하였다. 또 10여 명의 국회의원을 국제 공산당원으로 몰아 구속하였고 자유당은 대통령 직선제에다 내각 책임제를 약간 가미한 개헌안(발췌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고 국회는 만장일치로 이를 통과시켰다(1차 개헌: 1952.7). 새 헌법에 따라 1952년 8월 국민의 직접 투표에 의한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자유당 후보 이승만과 이승만이 지원한 무소속의 함태영이 각각 2대 정.부통령에 당선되었다. ⑤ 7차 개헌(유신 헌법: 1972)에서는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고,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이 추천하며, 대통령이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을 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