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가),(나) 조약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해설
(가) - 한일 의정서(1904). 군사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수시로 사용할 수 있다(일본이 러일전쟁 일으키고 나서) (나) -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칠 것> = 이미 통감이 있었다 즉, 통감정치 이후의 차관정치(정미7조약=한일신협약(1907)) *통감정치 사료와 비교 -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서 한국 황제 폐하의 아래에 1명의 <통감을 두어> ~~" = 2차 한일협약(=을사늑약) 즉, (ㄱ)'통감을 두어' (ㄴ)'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할 것' <- (ㄱ)과 (ㄴ)은 엄연히 다릅니다. (가)=한일 의정서(1904)와 (나)=정미'7'조약(190'7')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 중 대표적인 조약은 을사늑약(=2차 한일협약,1905)이고 이후 고종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이준, 이위종, 이상설을 특사로 파견함(헤이그 특사) 1. 안중근의사는 1909년에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음. 2. 남한 대토벌작전은 정미의병 이후 해산병들이 의병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도중 1909년에 대대적인 의병 토벌작전을 실시하였음. 3. 1894년 정부는 동학농민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청에 원군을 요청하였고(외세 돌려막기) 톈진 조약으로(일본은 청과 동등하게 조선에 대한 파병권을 얻음) 일본 또한 출병, 이후 경복궁 점령. 5. 1885년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했음. 청의 이홍장이 중재하여(외세 돌려막기) 영국군을 철수시킴.